워낭소리
Private Library | 2009/02/20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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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낭소리. 마음을 살살 어루만지는 영화다. 아마 혼자 봤다면 사람들 가득한 극장에서 엉엉 목놓아 울어버렸을거다. 터져나오는 울음을 꾹꾹 눌러대며 눈물만 줄줄 흘렸다. 웃고, 울고, 울면서 웃고, 웃으면서 울고, 엉덩이에 뿔 수십개는 났겠다.

이 영화는 죽음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삶과 소통에 대한 이야기다. 여든 가까이 연세 지긋한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있고 40년 가까이 함께 지낸 소 한마리가 있다. "죽음"으로 이야기가 끝날 거라는 건 뻔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이야기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예정된 죽음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나누는 소통의 방식과 그 깊이다.

Communication, 소위 소통이라는 것에 대해 고민하던 시절이 있었다. 라깡을 주마간산으로 읽고 마음대로 내린 결론이 "사랑은 오해다"였으니, 과연 인간과 인간이 온전히 소통할 수 있는지에 대해 꽤나 회의적이었던 시절이다. 물론 지금이라고 딱히 긍정적으로 바뀐 건 아니다.

그 당시의 나에게 가장 이상적인 소통을 보여준 영화는 바그다드 카페였다. 세상에서 가장 황량한 사막 한 가운데서 역설적으로 가장 이상적인 소통이 이루어진다. 그 역설이 "현실 세계에서는 이런 이상적인 소통 따위는 존재할 수 없어!"라고 말하는 듯해서, 한 편으로는 씁쓸해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2009년 2월, 나는 불꺼진 CGV용산 9관 어두운 좌석에 앉아 진정한 소통을 보았다.

할머니는 내내 신세한탄에 잔소리다.
내가 영감을 잘 못 만나서 이 나이먹을 때까지 이 고생이지. 저놈의 소를 팔아버려야 영감이 일을 안 하고 나한테도 일을 안시키고 그래야 내가 좀 편하게 살텐데, 남들은 경운기에 트랙터에 편하게 농사짓는데 도대체 이놈의 영감은 소 한마리에 달구지 하나 달랑 가지고 나를 이 고생을 시키고. 남들은 다 농약치고 편하게 농사짓는데 소 여물 먹이는 밭이라고 농약도 못 치게 하고, 아 얼른 소 팔아요 소 팔아.
카메라에 대고 자진모리로 펼쳐지는 할머니의 바가지에 한참을 킥킥거린다. 아이고 할머니 입담 하나 좋으시네 할아버지 좀 피곤하시겠다 큭큭. 그러던 어느 순간, 소달구지 뒤에 할아버지와 나란히 올라탄 할머니가 터벅터벅 걷는 늙은 소의 야윈 엉덩이를 보며 말한다.
영감, 영감 돌아가시면 나도 죽을라요. 자식들이 내를 모셔갈리도 없고, 모셔간다고 해도 내는 눈치밥 먹으면서 살기는 더 싫고, 영감없으면 내가 우째 살아요.
평생을 할아버지에게 쏟아냈을 자진모리 신세한탄은, 결국 이 한마디와 다름없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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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는 밥만 먹고 나면 소 달구지에 올라타고 밭일을 나가신다. 소만큼이나 늙은 할아버지는 어릴 적 사고로 한 쪽 다리가 불편하다. 할아버지만큼이나 늙은 소는 비틀거리면서도 터벅터벅 달구지를 끌고 밭으로 향한다. 할아버지가 밭일을 하는 동안 늙은 소는 햇볕 아래서 꾸벅꾸벅 존다. 졸다가 깨어나서 밭가는 할아버지를 한참 쳐다보기도 한다. 시간이 되면 할아버지는 꼴을 베어서 소를 먹이고, 일이 끝나면 다시 소달구지에 올라탄다. 늙은 소는, 지난 몇 십년을 그래왔던 것처럼, 터벅터벅 달구지를 끌고 집으로 향한다.

할아버지는, 그 연세의 경상도 어른들이 그렇듯이, 무뚝뚝하다. 할머니의 신세한탄에 무대응으로 일관한다. 얼른 소 팔아 버리자는 할머니 말에는 아예 대꾸도 안 한다. 그런데 소는 끔찍이도 위한다. 고된 노동에 몸살이 나버린 어느 날, 시골집 방 안에 끙끙거리며 앓아 누워 눈도 못 뜨시던 할아버지가 마당에서 소가 음매하고 할아버지를 부르는 소리에는 눈을 번쩍 뜨고 고개를 들 정도이다. 할머니, 평생을 그러고 사셨으니 신세한탄 자진모리X2로 쏟아내실만도 하다.

아무래도, 할아버지는 소가 자식같은가보다. 소가 죽으면 장례 치뤄주고 본인이 상주노릇하실거라고 농담처럼 말씀하신다. 큭큭. 수의사가 소가 너무 늙어서 앞으로 1년도 못 살거라고 했을 때 할아버지가 지은 낭패의 표정은 복잡했다. 농사는 어떻게 짓나, 다른 소를 미리 구해야 하나, 그런데, 그런데, 수십년을 같이 지낸 이놈의 소가 죽으면 어떡하나.

그러던 어느 아침, 소가 주저 앉아버렸다. 할아버지가 아무리 소리를 치고 매질을 해도 우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 마지막이 온 것이다. 할머니는 틈만 나면 소 팔라고 잔소리더니, 막상 주저 앉은 소를 보며 한숨만 쉬며 소 앞에 앉는다. 할아버지는, 소가 평생을 코에 끼고 살았던 코뚜레를 풀어주고 무덤히 한 마디 툭 던진다. 조오은 데 가라이. 아, 이토록 가슴저린 한 마디라니. 잠시 후 소가 고개를 떨군다. 할머니는 고개를 돌리고, 할아버지는 고개를 떨군다. 할머닌지 할아버진지 누군가가 말한다. 그래도 소가 늙은이 둘이 겨울 잘 보내라고 땔감 다 준비해놓고 갔어. 천천히 돌아가던 카메라가 마당 한 구석에 산더미처럼 수북히 쌓인 땔감을 비춘다. 아,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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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와 할아버지와 늙은 소의 소통은 Non-Verbal이다. 상대에 대한 한없는 신뢰와 애정을 굳이 입밖으로 꺼내고 습관적인 행동으로 보이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저런 사정이 달라지거나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불거진다해도 그 신뢰와 애정은 흔들리지 않는다는 믿음, 그것은 수십년의 세월을 온전히 함께 보낸 자들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인지도 모른다. 섬세한 말로 이루어지는 소통이 아름다울 수는 있지만, 결국 소통을 지속시키는 것은 피상이 아닌 피하에 존재하는 투박한 그 어떤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 영화가 무성영화로 나왔다해도 그 감동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을 거다. 바그다드 카페에서 소통의 한 당사자였던 자스민이 영어를 더듬거리는 독일 여자로 나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나는 밭일하며 고생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보면서도 전혀 안쓰럽지 않았다. 오히려 참으로 부러웠다. 누군가 이 분들을 안쓰럽다고 한다면, 그건 충만한 소통에 대한 기억을 잃어버린 인간의 오만일 거다. 문득 가슴이 먹먹해진다. 내 인생에 이렇게 흔들리지 않고 오래도록 묵묵히 지켜봐주는 소통을 경험할 수 있을까. 월급 명세서나 아파트 시세 따위 꼬박꼬박 챙기며 위만 보고 사는 게 잘 사는 게 되어버린 이 빌어먹을 땅에서 말이다. 뭐, 내 인생 결국에는 나 살기 나름이겠지만서도, 참으로 아름답도록 빌어먹을 시절인 건 사실인 거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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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 할머니, 부디 오래오래 행복하게 지내시길 진심으로 빕니다.

건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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